나...프리다 칼로(프리다 칼로의 편지와 자화상들)

강경숙(깡자)

30년 전, 대학을 갓 졸업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 서울로 갔다. 문예 아카데미에서 한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도 나도 결국 소설가는 되지 못했지만, 소중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니 그 일 년이 헛되지는 않으리라. 그 언니가 어느 날 불쑥, 읽어보라며 건네준 책이 바로 이 책, ≪나...프리다 칼로≫이다.

프리다 칼로(1907년 7월 6일 ~ 1954년 7월 13일)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1913년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쇠약해지는 장애가 생겼고, 1925년 18세 때의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하반신마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으며 평생을 총 35번의 고통스러운 수술과 함께 보내야 했다. 1925년 연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와 21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하였으나 디에고의 여성 편력으로 1939년 11월 이혼했다가 1년 뒤에 재결합하였다. 1954년 7월 13일 폐렴이 재발하여 사망하였다.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사고로 자궁을 크게 다쳤었기에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세 번 모두 유산했다.

이 책의 앞부분은 그녀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삶에 반복된 고통과 절망은 수많은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다. 특히 작품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자화상을 보다 보면 그녀의 고통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척추 수술과 유산에 관련된 그림들은 너무나 처절해서 마주하기가 힘들다. 그림은 마치 꿈속을 나열해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래서 생전에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불렸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나의 현실을 그릴 뿐’이라며 그렇게 불리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생전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정도로 여겨졌지만 1970년대 페미니즘의 부상 이후 재조명되어, 20세기 멕시코 예술과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된 이유도 “나의 현실을 그릴 뿐"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말 그대로 고통뿐인 자신의 현실을 직면한 것, 그것을 그림으로 솔직하게 표현한 것,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 것 말이다.

그녀의 솔직함은 이 책의 뒷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녀의 편지들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녀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읽으며 나 또한 프리다 칼로의 내면을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1949년에 쓴 에세이 ‘디에고의 초상’이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저렇게나 자신을 사랑했던 프리다가 왜 끊임없이 외도하는 디에고와 결혼에다가 재결합까지 해야 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글은 남편 디에고가 아닌 혁명가이자 예술가인 디에고에 대한 에세이였다. 그녀는 이 글이 객관적이지 않으며 디에고의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할 수도 있다고 미리 밝히고 있다. 이들은 이즈음 이미 예술적 동반자로서, 공산주의 혁명의 동지로서 더 끈끈한 관계였나 보다.

나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 언니는 나에게 이 책을 왜 권했을까? 나는 그때 어떤 모습이었던가? 답도 안 나오는 질문들 속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한 가지는 아마도 언니가 나에게 힘을 주고 싶었을 거라는 점이다. 자신을 직면하고 사랑하고 표현하라는 메시지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남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느라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데 누가 뭐라 할 것입니까? 여기 자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을 봐요. 우리도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