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알던 세상을, 퀴어링하게 다시 만난 세계

: 한정현 <쿄코와 쿄지>를 읽고

민뎅(김민정)

2025년 첫 ‘한쪽’으로 어떤 책을 추천할까 조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제게도 좋은 책과 영화여서 고민했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워낙 유명하기도 하니 이번엔 다른 책을 알리면 어떨까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정현 작가의 단편소설집인 <쿄코와 쿄지>를 골랐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인데, 프롤로그는 그의 등단작이며 그 소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의 소설 속은 우리가 여성/젠더, 퀴어로서가 아닌 역사 그 자체로만 만나온 세계를 다르게 접하게 해줍니다. 그의 소설은 ‘퀴어링’한 역사 소설로서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비로소 혹은 새삼 다시금 알게 됩니다. 어느 곳에서나 여성이, 퀴어가, 소수자가 존재했다는 것. 언제나 그들이 어디서나 존재해왔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말이지요.

소설 ‘쿄코와 쿄지’에선 등단작에서 남쪽으로만 칭해졌던 지역명이 나옵니다. 그곳은 바로 광주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면서 이 소설은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함께 건넵니다. 사적인 공간으로 치부되던 가정에서의 폭력과 차별을, 여자와 결혼한대서 집안에서 쫓겨난 여자의 이야기를, 인터섹스의 몸과 지정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성별정체성의 이야기가, 또한 좋아하고 함께 살았으나 제도적 힘이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짧은 소설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도 그것이 욕심이라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다양함이 그대로 존중 받지 못하고 폭력에 노출되는 모습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 소설은 유의미하게 가 닿습니다. 한정현의 소설은 광주민화운동, 부마항쟁, 용산참사, 베트남전쟁 등 국가폭력과 사회적 재난을 다루면서 그 사건들 속 그리고 그 사이와 사이에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존재해온 가스라이팅, 스토킹, 폭행, 강간 등 젠더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폭력 속 사소하게 치부되거나 쉬쉬되었던, 그러나 명백히 존재하였던 폭력에 대해서 말이지요.

​‘쿄코와 쿄지’ 소설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외에는 다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배제하며 살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역사를 그리고 우리 사회와 일상을 젠더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바라보면서 그것을 퀴어링한다는 것은 이런 깨달음을 확장하고 다시금 세상을 써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소중하게 권해봅니다.

덧붙임: 한정현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연작소설도 존재하지만, 마치 연작인 듯 앞선 소설의 주인공과 이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한 소설집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만들고 싶다”던 작가의 바램은 한 소설 안에서 퀴어링한 페미니즘 세계를 만들기도 하지만, 소설과 소설을 넘나들며 그려지는 세계를 만나는 놀라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언젠가 대센에서 한정현 러버를 만나 소란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_^

덧붙임2: 실은 지금의 시국을 생각하며 여러 책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쿄코와 쿄지>에서도 나오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른 방식으로 읽고 고민해볼 수 있는 책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도 있지요. 참고로 2월 루바토 북클럽 선정 책이라고 하니, 읽고 함께 마주하는 것도 기쁨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