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020 그리고 불일치>> 3편

불일치 ‘이끼’

지난 9월 2일 전국연대에서 ‘국경을 넘는 성착취, 해외로 성구매하러 가는 남자들’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며칠 전에 토론회에 함께 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준비한 글을 대구여성인권센터 소식지로 담기 위해 글을 정리했다.

이 글을 지난 십수 년간 동남아시아를 다니며 겪은 이야기이고, 특히 2018년과 2020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넘나들었던 시간들이고 반성매매 남성모임 ‘불일치’까지의 고민을 담았다.

--------------------------------------------------------------------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두 번의 동남아시아 장기여행은 중요한 감각을 일깨웠다.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성매매를 피하거나 도망칠 수 없다는 것.

남중-남고의 학창시절에 ‘자갈마당’을 들어본 적 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친구들이 키득키득 거리며 말하는 자갈마당은 해산물 가게인 줄 알았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오랫동안 횟집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학창시절을 지나 20살이 되면서 해외 성구매에 대해 인식도 생겼다. 2000년대 초중반이던 그때, 필리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중-남고의 남성 문화로만 6년의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해외로 떠날 수 있는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해외 여행지가 필리핀이었다. 물가도 저렴하고 영어 소통도 가능하다는 필리핀에 따라오던 이야기는 유흥과 성매매가 가능한 곳이라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들 중 누구도 필리핀을 다녀온 적이 없지만 마치 생생한 경험담처럼 어떻게 성매매를 할 수 있으며 가격이 얼마인지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었다. 매번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나의 첫 번째 궁금증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아느냐였다. 지금 돌아보면 스마트폰이 보급되지도 않았고 번역 어플이나 지도 어플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해 해외여행의 난이도가 높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런 정보들은 직접 경험한 누군가로부터 남성집단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왔던 것 같다. 이는 해외 성구매가 늘어나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커뮤니티와 사이트라는 정보 공유 형식이 바뀌어 온 것 같다.

성매매를 처음 인식하던 순간은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고 마침 내가 마이크를 잡던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처음 보는 여성들과 눈이 마주쳐서 부르는 노래를 멈추고 ‘어.. 방을 잘못 오신…’것 같다는 말을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뒤쪽에서 아니라며 “앉으세요”라는 말이 들려올 때쯤 잠깐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뭐냐고 물었지만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당시 나의 느낌은 나는 놀라운데 왜 친구들은 놀라지 않는지. 그 지점이 의아했다.

그리고는 이내 친구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보내고 우리끼리 놀자는 나와 그냥 오늘은 즐겁게 놀자는 친구들. 우리들끼리 놀면 즐겁지 않냐, 어색하니 우리끼리 놀자는 나의 모든 제안을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나의 마지막 카드는 지난 수년간 우리가 보냈던 시간들의 우정을 꺼내 들었고, 우정으로 내 의견을 받아달라고 했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는 분위기 깨트릴 거면 가라고 했고 시원하게 욕 한 번 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자리를 나오면서 든 가장 큰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자연스러워하는 모습이 황당했고, 수년간 지내오면 쌓은 우정은 즐거움을 깨트린다는 이유로 별 것 아닌 것이 된 그 순간이 황당했다. 집으로 돌아와 쉬이 잠들지 못했고 한참 동안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생각을 곱씹었다. 설득도 해보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뭔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패배감으로 꽤 오랜 시간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친구들보다 몇 년 늦은 탓에 이미 군대를 전역한 친구들도 있었다. 나의 군입대에 맞춰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 자리가 있었고, 뒤이어 친구들은 군대 가기 전 선물을 하겠다며 나를 차에 태웠다. 한참을 익숙한 거리를 지나 어떤 낯선 곳에 다다랐을 때 그곳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썬팅된 차 유리와 저 너머 투명한 유리 사이에 모든 것이 붉었다. 붉은 빛은 온갖 힘든 감정들을 들게 했다. 뒷자석에 앉아 빨리 나가자고 화를 냈다. 앞좌석의 웃음소리도, 느리게 가는 차도 모두 화가 났다. 큰길로 나오고서야 차를 세웠다. “니들이 말하는 선물이 뭐냐”고 한참을 따져 물었지만 친구들은 붉은 빛의 얼굴로 그저 웃기만 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노래방 때와 같은 감정이 들었다. 특히 ‘저 차는 다시 그 거리로 돌아갔을까’라는 의문이 번뜩 들었다. ‘다시 돌아가서 끌고 나와야 하나’, ‘설마 돌아가지는 않았겠지’, ‘이들은 자갈마당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정말 군복무를 하며 알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아무 결정을 하지 못한 채 택시는 집에 도착했다.

‘노래방도, 자갈마당도 난 아무것도 못했다’, ‘저항은 했지만 어떤 균열도 내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그저 난 피할 수밖에 없겠구나’ 두 번의 경험으로 관계는 끊어졌지만, 끊어짐에 대한 아쉬움보다 남성 연대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도망쳤다는 패배감이 더 진하게 남았다. 한동안 붉은 거리에 갇힌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사회운동을 만나고 함께 했다. 그 전까지 심해졌던 타인에 대한 불신도 사회운동을 통해 빠르게 회복했다. 그렇게 편안함을 느끼며 몇 년을 지내다가 다시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노동조합의 청년 활동가 모임을 초대받아 나간 자리에서 여성 조합원이 모두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여 10여 명 남짓 남성들만 모였다. “여자들은 아무도 안 오냐”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낼 때 들었던 느낌은 20대 초반에 겪은 두 경험들과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다. 이내 시작된 대화는 성매매 업소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모습이었고, 이내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일어났다. 일찍이 대구여성인권센터도 알았지만, 이런 고민을 나누기에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20대 초반 이후로 ‘잘 피해 다니자’가 기본값이 된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침 뱉고 욕하기’ 특히나 사회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이런 관계망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 피해 다닐 무언가가 없으니 대응의 기본값들도 삶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것은 기대보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믿음도 그렇게 무너지고 나니 또다시 잘 피해 다니는 법이 화두가 되었다.

이미 피해야 할 곳들이 많아졌다. 순간을 지날 때면 침 뱉고 욕할 준비를 하면서 나가야 한다. 생각보다 피로한 일의 경험치들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제법 잘 피해 다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매년 나가는 해외는 일종의 탈출구 같은 느낌을 줬다. 낯선 공간에서 적절히 낯선 여행자의 거리감이 되려 안전감을 줬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 간판이 하나둘 늘어나고, 한국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해외에서도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2018년 라오스에서 호객행위 하던 남성과 대화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외마디로 내뱉은 말이 “더 이상 피할 수 없구나”

더 이상 피할 수 없기에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불일치’를 해보자고 했다. 그 이전에도 남성들의 모임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다. 물론 그때는 ‘잘 피해 다니는 사람’들끼리 모여 세상에 ‘침 뱉고 욕하는’ 모임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머릿속으로 구상해봤지만 그런 것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접었다.

‘불일치’를 만든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소규모로 모이고, 모여서 작은 무언가라도 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첫 모임에서 다음 시간에 자갈마당 옆이어서 허물어 개발되기 전에 터를 둘러보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모임 때까지 붉은 빛의 악몽을 계속 꾸는 바람에 두 번째 모임을 빠질까 고민도 했지만 다행히 둘러보고 난 이후로 일종의 긴장감들이 해소되었다. 몇 번의 부정기적인 모임이 지나고 이내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수년간 모임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그 사이 구성원들이 지역을 떠나는 등의 이유로 인원충원 없이 줄어들었다.

지난 전국연대 토론회에 급하게 섭외연락을 받고 응했던 마음 중에 하나가 ‘